야설게시판

귀농일기 - 14부

이틀 동안은 집밖으로도 나가지 않고 컴퓨터 작업에 매달렸다. 펜션 홈페이지는 체험관리 프로그램까지만 관리가 가능하다. 온라인 판매를 위해서는 새로운 사이트를 개설해야 한다. 면사무소와 도청에 연락해서 취지를 설명한 이후 도움을 받을만한 지원프로그램이 없는지 알아보니, 잘하면 농어촌발전기금이나 영농지원금 등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홍보자료도 만들기로 했다. 예전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추진해 본 경험이 있으니 시간이 좀 걸리지만 작업하는데 무리가 없을 것이다.



다음으로 막걸리를 판매를 위한 절차를 알아보았다. 주류를 판매하려면 허가를 받아야 한다. 다행이 일본댁집에서 예전부터 막걸리를 판매하고 있었기에 허가를 받아 놓은 상태였다. 막걸리를 가져갈 수 있는 포장용기를 알아보았다. 동네에서 파는 것처럼 주전자에 담아 팔수는 없지 않는가? 음료용기를 만드는 회사를 검색하여 전화로 상담해 보니, 소량주문제작은 불가능하고 대량으로 구입해야 주문 제작이 가능하다고 했다. 잠시 고민하다가 주문 제작이 아니라 공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용기가 없는지 알아보았다. 다행이 일반 치킨 집에서 맥주를 담아 파는 공용상품이 있다고 했다. 판매할 제품이 막걸리라고 하자, 맥주에는 탄산이 들어가고, 막걸리도 발효과정에서 탄산 비슷한 것이 발생하니 안성맞춤이라고 했다. 최소 주문수량이 천개라고 해서 일단 천개만 주문했다. 나중에 CI도 확정되고 판매가 활성화되면 정식으로 주문제작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다음으로 카드회사에 전화에서 가맹점가입과 단말기 설치에 대해 문의한 이후, 일본댁과 카드회사를 연결시켜 주었다.



금요일 오후에 경미일행이 도착했다. 경미까지 포함하여 여학생 4명, 남학생 2명이다. 모두들 반바지에 티셔츠 차림인데, 경미만 청바지에 남방을 걸치고 있었다. 학생들을 A동으로 안내했다.



“남자들이 2층을 쓰시고, 여자 분들이 1층을 쓰시면 됩니다.”

“이장님! 저희들 아직 밥도 못 먹었는데, 식사 좀 할 수 있을까요?”



넉살 좋게 생긴 조장이 배를 문지르며 이야기 한다.



“밥을 주는 건 문제가 없는데, 음식을 해주시는 분이 좀 어리다보니 맛은 장담할 수 없어요.”

“아휴~ 주시는 것만 해도 고맙죠. 돌도 씹어 먹을 나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속으로 피식 웃으며 식사를 준비해 주겠다고 했다. 이것들이 아직 연변댁 음식 맛을 보지 못해서 그러는데, 한번 먹어봐라. 그나마 일본댁에게 배워 조금은 나아졌다고 하지만 극악의 음식 솜씨가 단시간에 바뀌겠는가? 연변댁에게 음식을 준비해 달라고 부탁하고, 학생들이 불쌍해서 읍내에 나가 고기와 술을 사왔다. 식사는 본체 앞에 있는 평상에서 하기로 했다. 바비큐 통을 가져와 숯불에 고기를 굽고, 연변댁은 밥과 반찬을 준비했다. 짐을 정리한 학생들도 나와서 일손을 도우니 금세 밥상이 준비되었다.



“다들 내려오느라 수고하셨어요. 자~ 한잔씩 받으세요.”



학생들에게 소주를 둘리고 원 샷을 한다. 학생들이 밥을 먹는데, 표정들이 장난 아니다. 여학생들은 바로 물을 찾고, 남학생들은 밥을 손가락으로 퍽 먹는다. 그나마 김치는 연변댁 솜씨가 아니니 먹을 만한 모양이다. 고기와 김치를 안주삼아 술병이 쌓여가자 학생들이 슬슬 긴장이 풀리는 모양이다. 조장이라는 놈이 술을 따라 주며 속삭인다.



“저분 누구세요? 따님이세요?”

“왜요?”

“너무 예뻐서요.”



연변댁이 이제 21세에 남에 비해 빠지지 않은 외모이니 관심이 가는 모양이다.



“동네 동생 부인이에요.”

“예? 유부녀란 말이에요?”

“하하하!~ 그래요. 연변에서 시집 온지 얼마 되지 않았어요.”

“아아~ 연변! 아깝다.”

“뭐가 아까워요.”

“아닙니다. 자 받으시죠.”



조장이 급히 말을 돌리며 술을 따라준다. 술을 마시며 둘려보니 여학생 한명이 다른 남학생과 붙어서 속삭이고 있고, 나머지 3명의 여학생들은 자기들끼리 수다를 떨고 있다. 젊고 싱그러운 것들을 보니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그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학생은 경미였다. 아마도 아내와 비슷하게 생겨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식사가 끝나고 시간이 늦어 연변댁을 돌려보냈다. 학생들은 아쉽다면 더 먹자고 한다. 내키지는 않지만 부탁하는 입장이니 다른 손님들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A동에 술상을 마련했다. 술병이 쌓이자 정신이 몽롱해진다. 젊은 것들하고 마시니 감당이 안 되는 것이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밖으로 나와 담배를 한 대 물었다. 길게 담배연기를 뿜어내다가, 한쪽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는 여학생을 발견했다. 이름이 이수정이라고 한 것 같은데, 눈이 마주치자 얼른 담배를 버리고 펜션으로 도망친다. 자유분방한 세대이니 무엇을 이해 못할까?



밤하늘을 보며 예전의 추억에 잠겨본다. 그때는 참 겁도 없고, 억매임 없이 자유로웠다. 지금의 아내도 그때는 참 청순하고 아름다웠는데, 세월이 흐름에 따라 옆에 있는 것이 당연시 되면서 서로가 새로운 것도 없고, 그저 그런 것처럼 그냥 그대로 세월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그런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닐까? 그게 싫증나서 새로운 것을 찾거나 과거의 내 모습에 대한 향수 때문에 옛 사람을 만나는 것일까? 술이 취하니 잊으려했던 고민이 다시 생각난다. 다시 들어가려 하는데, 경미가 나왔다.



“어~ 경미씨 취했어요?”

“아니요. 그냥 더워서 나왔어요.”



창문을 통해 안을 들어다보니 한 쌍의 남녀가 키스를 하고 있고, 나머지 남녀가 박수를 치고 있다.



“저거.....뭐하는 겁니까?”



경미가 힐끗 보더니 쓰게 웃는다.



“왕게임. 이장님이 나가시니 선배들이 게임을 하자고 해서.........”

“선배? 동기들 아니었어요.”

“남자들 두 분은 예비역이에요.”

“아예! 경미씨도 같이 놀지 왜 나오셨어요.”

“전 저런 게임 싫어해요.”



늙은 놈(?)이 들어갈 분위기도 아니라서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데, 경미도 함께 하늘을 바라본다.



“저번에 제가 사모님과 많이 닮았다고 하셨잖아요.”



분위기가 어색하자 경미가 먼저 말을 꺼낸다.



“사모님은 어떤 분이세요?”

“음~ 공무원이죠.”

“아이 참~ 그런 거 말고.........두 분은 어떻게 만나셨어요?”

“대학교 CC 엇어요.”

“그럼 대학교 때 만나신 분과 결혼하신 거예요?”

“그런 셈이죠.”

“무척 사랑하셨나 봐요.”

“그러니까 결혼했죠.”

“재미없어?”



경미가 입을 삐죽거리며 토라진 표정을 짓는다.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로 귀엽다.



“그런데, 사랑하는 분과 왜 헤어져 지내시는 거예요?”

“그 질문 많이 받았는데, 다들 궁금한 모양이죠.”

“아니 사랑하신 분과 결혼했는데, 지금은 혼자 계시니까 이상하잖아요.”

“사랑은 변하는 겁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변해요. 그럼 이장님은 이제 사모님을 사랑하지 않으세요.”



도발적인 질문에 말을 못하고 다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담배연기가 허공으로 날아간다.



“사랑에 대한 정의는 많죠. 또한 방식도 많아요. 그래서 한 마디로 이게 사랑이라고 말하기 힘들죠. 와이프를 사랑하지 않느냐? 모르겠어요. 다만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떤 존재인지는 알아요.”

“............”

“우리 사랑하는 영이의 엄마. 세상에서 가장 많이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여자.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여자. 대충 이런 의미가 더 강하지 않을까요?”

“결혼하면 남자들은 다 그래요?”

“세상에 똑 같은 놈만 있나요. 다른 놈도 있겠죠.”

“뭐야. 이장님 비겁해요.”

“뭐가 비겁하다는 겁니까?”

“왜 대답을 회피하세요.”

“무슨 대답을 회신했다는 거죠?”

“전 이장님, 생각을 물어본 건데, 이장님은 다른 사람들 이야기나 하며 대충 얼버무리시잖아요?

“이 세상에 정답은 없어요.”



경미는 힐끗 보더니 하늘을 바라본다.



“휴~ 그만 들어가야겠네요.”



경미는 한숨을 쉬고 펜션으로 돌아간다. 시간을 보니 12시가 넘었다. 창문을 통해 보니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만 빠져주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하고 본체로 돌아와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어김없이 연변댁이 7시에 왔다. 전날 마신 술이 아직 깨지 않아 잠을 자고 있는데, 연변댁이 안방까지 들어와 깨운다.



“일어나세요.”

“어~ 연변댁?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어휴~ 술 냄새. 얼마나 드신 거예요.”

“아우. 속 쓰려. 해장라면 부탁해요.”

“라면이요. 밥을 드셔야죠.”

“아니야. 아니야. 해장라면이면 충분해요.”



라면을 먹고 A동으로 가보니 역시 젊은 것들이라 일찍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고 있다. 식사가 끝나고 학생들과 함께 길을 나섰다. 마을 어귀부터 시작하여, 지리산의 품에 안긴 풍요로운 논과 밭을 보여주고, 숲이 우겨진 마을의 모습과 시원한 계곡물을 보여 주었다. 학생들은 가지고온 컴퍼스에 스케치를 하며 안내에 따라 움직였다. 마을을 돌다보니 점심시간이 다 되었다. 경미가 할머니께 점신을 부탁했다며 할머니 집으로 가자고 했고, 모두들 쌍수를 들어 환호한다. 어제 연변댁의 음식을 먹고 나서 모두들 느끼는 것이 많았던 모양이다. 식사하는 중에 조장이 다가왔다.



“이장님. 마을은 봤으니, 이제 특산품을 보여주세요.”

“그렇게 하죠.”



식사가 끝나고 학생들과 함께 대나무 숲과 일본댁의 집을 방문했다. 죽순주도 마시고, 막걸리도 마시고, 여기저기 돌다보니 5시가 넘었다.



“이장님! 조금 전에 들어보니 상황버섯도 재배하신다고 하시던데 그곳도 가볼 수 있을 까요.”

“거긴 아직 준비단계란 보여주기 민망한데.......”

“이제 볼 건 다 봤잖아요. 거기만 남았어요.”



조장의 말에 내키지는 않지만 하우스로 향했다. 거의 일주일 만에 오니 낮선 느낌이다. 하우스에 들어서니 클래식 음악이 가정 먼저 반기고, 일렬로 정렬된 뽕나무에 갓 피어난 버섯들이 손님들을 맞이한다.



“누구야.”



학생들이 신기한 마음에 들어서는데, 날카로운 소리가 들린다.



“접니다. 학생들이 견학하고 싶다고 해서 와서 함께 왔어요.”



짧은 반바지에 탱크탑을 걸친 우나댁이 힐끗 보고는 학생들에게 다가왔다.



“발. 조심해. 거기 만지지 마.”



우나댁은 마치 자기가 주인인 것처럼 학생들에게 일일이 주의사항을 알려주며 안내한다. 조장이 다가와 속삭인다.



“누구세요. 정말 미인인데.........”



이놈은 치마 두른 여자라면 아무 한 테나 껄떡거리는 모양이다.



“우리 마을 형님 부인이에요.”

“정말 부럽다. 쭉쭉빵빵에, 저 이목구비하며..........아우, 그냥 한입에 삼켜버리고 싶네.”



어제는 술이 취했다고 하지만 오늘은 또 뭔가? 맨 정신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니 이놈도 지극히 정상적인 놈은 아니다. 눈치가 이상한지 놈이 실없이 웃으며 여학생들 겉으로 달려가 농담 따 먹기를 한다. 어이가 없어 피식 웃으며 둘려보는데 우나댁이 다가왔다.



“왜 왔어?”

“내 농장인데 당연히 와야죠.”

“흥~ 그래? 저것들은 뭐야?”

“우리 마을 CI을 만들어줄 학생들입니다.”

“CI? 그건 뭔데?”

“콜라상표가 뭐죠?”

“코카콜라. 펩시?”

“맞아요. 그게 CI에요. 일종의 상표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치~ 이제 별거 다하네.”

“그동안 잘 지냈어요?”



우나댁은 피식 웃더니 새침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뭐예요. 그 표정은?”

“됐어.”



짧게 대답한 우나댁이 다시 학생들 때문에 버섯이 상하지 않는지 감시한다. 애써 잊으려 노력한 덕분인지 몰라도 며칠 전처럼 이상한 감정은 들지 않는다. 학생들에게 상황버섯에 대해 설명해 주고 견학을 끝낸 다음 우나댁에게 인사했다.



“그만 갈게요.”

“잘 가!”



역시나 짧은 대답인데, 약간 실망하는 표정이다. 견학을 마치고 오니, 연변댁이 저녁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학생들은 자기들끼리 해서 먹겠다고 했지만 이미 준비한 음식이라 함께 먹기로 했다. 역시나 주먹을 부르는 음식솜씨에 모두들 소태 씻어먹는 표정들이다. 속으로 끽끽거리며 먹고 있는데, 조장 녀석이 다가와 속삭인다.



“이장님! 저분 몇 살이나 됐어요. 어려 보이는데?”

“20초반이에요. 아마 같이 온 학생들보다 더 어릴 겁니다.”

“와우~ 완전 연계네. 이장님 좋으시겠다. 저런 미인들하고 일하시고......”

“부러우면 내려오세요. 귀농하면 되잖아요?”

“아이~ 농담입니다. 그건 그렇고, 오늘도 한 잔해야죠.”



이놈도 술깨나 좋아하는 모양이다. 가끔 손님들이 찾는 경우가 있어 술과 담배들은 향상 비축해 둔다. 창고에서 술을 꺼내 학생들에게 따라주니 어제 그렇게 마시고도 또 들어가는 모양이다. 조장 놈이 술을 따라주더니 연변댁을 부른다.



“한 잔 받으세요.”

“아니 전 못 해요.”

“성의데, 딱 한 잔만 받으세요.”



조장이 계속 종용하니 연변댁도 마지못해 술을 마신다. 연변댁이 술을 마시는 모습은 처음 봤다. 그녀는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소주 때문에 오만상을 찡그리며 조장에게도 술을 따라준다. 그런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경미가 앞에 있는 잔을 비우더니, 혼자서 술을 따른다. 분위기가 이상해서 연변댁을 돌려보내고 술을 왕창 가져왔다. 빨리 마시고 취해야 끝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남자 놈들이라 그렇다고 쳐도 여학생들도 무슨 술 못 마셔 죽은 조상귀신이 붙은 것처럼 죽어라 마셔대고 있다.



“이장님은 왜~ 안 드세요.”



부조장이라고 하는 수정이가 반쯤 혀가 꼬부라진 목소리로 말한다. 어제 담배를 피우던 여학생이다.



“저는 잘 못해요.”

“예이~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죽어도 같이 죽어야지. 자~ 이장님 건배.”



한 대 쥐어박고 싶지만 분위기를 맞추자는 의미에서 입만 대고 내려놓았다.



“어~ 이장님! 딱 걸렸어. 건배를 했으면 다 마셔야죠.”



그래! 한번 누가 이기나 보자는 심정으로 모두 마시고 잔을 건네준다.



“수정학생이라고 했죠. 자~ 건배.”



다시 잔을 비우고 3번째 잔이 돌아가는데, 남학생이 수정의 잔을 빼앗는다.



“많이 취했다. 그만 마셔.”

“왜 이래. 누가 취했다는 거야. 빨리 안 내놔~”



수정이가 막무가내로 잔을 빼앗으려하자 남학생이 억지로 일으켜 A동 펜션으로 끌고 간다. 이제 조금 쉬나 싶었는데, 이번에는 경미가 술병을 가져왔다.



“자~ 이장님 받으세요.”



경미도 많이 취했는지, 눈동자가 풀려 있다.



“많이 마신 건 같은데?”

“오늘 취하고 싶어요. 빨리 마시고 저도 주세요.”



이것들이 작당을 했나? 아무래도 오늘, 적당히 넘어가기 힘들 것 같다는 불안한 기운이 엄습한다. 하지만 무슨 오기가 났는지, 술잔을 비우고 경미에게 내밀었다. 경미는 술을 받더니 한쪽을 힐끗 쳐다보는데, 그곳에는 조장이 다른 여학생들과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이장님! 우리 조장 어때요! 멋있죠.”

“잘 모르겠는데”

“왜요? 훤칠한 키에, 남다른 유머감각, 패션도 저만하면 무난하고, 특히 집이 잘 살아요. 아버지가 중소기업 사장이라나?”

“조건은 나쁘지 않군. 하지만 남자가 남자를 보는 눈은 조금 달라요.”

“어떻게 다른 대요.”

“설명하기 조금 애매한데, 예를 들어 설명하면 여자가 여자를 보는 눈도 다르잖아요. 남자들이 예쁘다, 청순하다, 지적이다. 라고 하는데, 같은 여자들은 성형미인이다. 내숭이다. 재수 없다. 등등으로 평가가 갈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그래요? 전 좋은데?”

“누가 좋다는 거죠?”

“조장! 그런데 조장은 딴 여자만 바라봐요!”

“고백해 본적 있어요?”

“창피하게 여자가 어떻게 먼저 해요.”

“아직 절실하지 않군요. 그럼 그냥 접어요.”

“절실? 접어라! 왜요?”

“그런 이야기는 나중에 하죠. 자~ 술이나 드세요.”



이야기가 심각해지는 것 같아 술을 마시고, 잔 내밀었고 경미는 길게 한숨을 쉬더니 술을 마신다. 남의 연예사업까지 상담해 줄 정도로 여유가 넘치지는 않는다.



“A동 갔던 학생들은 어떻게 됐지. 한번 가봐야 되지 않나?”



계속 있으면 곤란해질 것 같아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말이라 B동에서 D동까지 손님이 만원이라고 했는데, 모두들 잘 계신지 모르겠다. 혹시나 우리들이 너무 떠들어 방해라도 되면 죄송하지 않는가? 발길을 돌려 B동부터 D동까지 한 바퀴 돌았는데, 다행이 가족이나 친구들과 재밌게 놀고 있다. 다들 마음잡고 놀려온 온 것이라 자기들도 술 먹고 떠들고 있으니, 다른 동에서 떠드는 것쯤은 너그럽게 넘어가는 것이다. A동으로 가는데, 불이 꺼져 있다. 이 친구들이 어디로 갔단 말인가? 혹시나 싶어 문을 두드리니 우당탕 소리와 함께 급하게 옷을 입는 남학생이 문을 열었다.



“이장님! 오셨어요.”

“걱정 되서 왔어요. 별일 없는 거죠?”

“예! 아무 일 없습니다.”

“다들 올라올 겁니다. 준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A동에서 내려와 보니 아직도 술을 마시고 있다.



“모두 그만들 마시고 정리합시다.”

“어~ 이장님 오셨네.”

“다들 많이 취했어요.”

“취하긴 누가 취해요. 저 멀쩡해요.”



술 취한 놈과 안 취한 놈을 구별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자기가 취했다고 하면 안 취한 거고, 멀쩡하다고 하면 취한 거다. 이놈도 확실히 맛이 가기 일보직전이다. 이런 놈에게는 강압적으로 이야기해야 씨아라도 안 먹힌다.



“안주도 다 떨어졌으니, 올라가서 2차 시작해야지. 어때?”

“하하하~ 역시 우리 이장님은 화통하세요. 가시죠.”



조장이 일어서는데, 다리가 휘청하며 비틀거린다. 저런 상태에서도 마시겠다고 하니 대단한 놈이다. 여학생들도 비틀거리긴 마찬가지지만 꼴에 조장을 위한 다고, 양쪽에서 부축해서 올라간다. 한심한 광경을 지켜보는데, 경미가 움직일 기미가 없다. 많이 취한 모양이다. 일단 평상을 정리하는 것이 급하기에 포대자루를 가져와 빈병을 담고, 비늘봉지를 가져와 음식물 쓰레기를 담았다. 다음으로 창고에서 대아를 가져와 식기들을 몰아 담으니 대충 정리가 끝났다.



“경미학생. 경미학생 일어나?”



경미가 바닥에 쓰려져 있는데, 흔들어도 일어날 기미가 없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술 먹고 정신 못 차리는 경미를 보니 예전 아내 생각이 난다.



군대 간 애인을 기다리는 아내는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열 번 찢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계속해서 애정공세를 날리니 아내도 차츰차츰 마음이 돌아섰는데, 문제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육체관계는 한사코 거절하는 것이다. 크리스마스 이부를 D데이로 잡고, 모텔을 예약한 다음 1차로 동아리 동기들과 죽어라 마시고, 선물 줄 것이 있다고 꼬드겨 2차에서 양주를 먹었다. 당연히 아내는 인사불성이 되었고, 모델로 데리고 들어가 거사(?)를 완성했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아내가 처녀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경미는 어제와 다르게 무릎에서 약간 올라간 청치마와 하얀 티셔츠를 걸치고 있는데, 술이 떡이 되어 펴져 있는 관계로 치마는 허벅지까지 올라가 날씬하고 쭉 뻗는 다리를 드려내 놓고, 티셔츠도 앞섬이 벌어져 가슴골이 한 눈에 들어온다. 막말로 털도 뽑지 않고 잡아먹어도 비린내도 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동내 어르신 손녀라 뒤탈이 생긴 것이 자명하니 늑대로 변하기 전에 마음을 다 잡았다.



“경미학생 일어나봐~”



경미의 손을 잡고 일으키지만 늘어진 문어처럼 힘이 없다. 이대로 밖에 둘 수는 없으니 업어서 옮기기로 하고, 양팔을 잡아 일으킨 다음 등에 업었다. 상큼한 향기와 함께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감촉이 느껴진다. 힘을 내서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경미의 다리가 바닥에 끌린다. 보기보다 키가 큰 모양이다. 허릴 굽혀 완전히 등에 기대게 한 다음 다리를 양팔에 끼우고 일어났다.



“끙~”



경미는 술 취한 와중에도 몸이 휘청거리자 떨어지지 않으려고 양팔로 목을 잡고 매달린다. 술은 학생들만 마신 것이 아니다. 혼자 걸을 때는 몰랐는데, 경미를 엎고 걸으니 다리가 휘청거리고, 경미는 떨어지지 않으려 더욱 몸을 밀착한다. 어깨에 얼굴을 기다고 있는데, 경미의 긴 머리까락이 흘려내려 얼굴을 간질이고, 젤리처럼 부드러운 젖가슴이 등을 자극한다. 빌어먹을, 이게 무슨 개고생인가? 몇 걸음 걷지 않았는데, 비 오듯 땀이 솟아지고 경미의 엉덩이가 자꾸만 내려간다. 허리를 굽혀 다리 반동을 이용해 위로 올린다음 엉덩이를 손으로 받쳤다. 청치마라 소재가 두꺼운데도 불구하고 애민해진 감각은 팬티라인까지 감지하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다. 드디어 펜션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이 잡것들이 정말로 또 술을 마시고 있다. 길게 한숨을 쉬고 한쪽 구석에 경미를 눕혔다.



“어라~ 경미! 완전히 뻗어 버렸네.”



당장 쓰려져도 이상한 것이 없는 조장 놈이 썩은 동태눈깔로 바라보며 말한다. 성질 같아서는 눈깔을 파버리고 싶지만 체면이 있으니 꾹 눌려 참았다.



“다들 많이 취했네. 그만 마시고 자요.”

“이런 날 아니면 언제 마시겠어요. 애들아! 안 그래.”

“그럼 마시고 죽자.”



남자 두 놈이 분위기를 몰아가니 정신 빠진 여자들도 좋다고 한다. 그래. 술이 이기나 너희들이 이기나 보자. 이것들을 그냥 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허리띠를 풀고 자리에 앉아 각자 잔에 넘치도록 술을 따라준다.



“그래. 지금 아니면 언제 이렇게 마셔보겠어. 나도 오늘 날 잡았다. 자~ 모두 마시고 죽어보자. 건배.”



분위기를 조금 띄우자 연놈의 새끼들도 좋다고 마신다. 쉴 틈을 주면 안 된다. 잔을 머리에 털고, 다시 잔을 채워서 건배를 한다. 술이 연속으로 3순배가 돌아가자 ‘쾅’소리가 났다. 바람 잡던 조장 놈이 장렬하게 전사하신 모양이다. 안주 먹을 틈도 없이 4잔째 술이 돌아가자 연놈들도 이제 잔을 꺾기 시작한다.



“뭐야. 이거 보여. 빨리 안 마셔.”



잔을 비우고 머리에 탈자, 마지못해 마신다. 수정학생도 남학생 어깨에 기대어 전사하셨다. 이제 남은 것은 여학생 2명과 남학생 1명이다.



“수정아. 수정아.”



남학생이 수정학생을 흔들지만 역시나 대답이 없다.



“수정이 좀 눕히고 올게요.”



남학생이 수정학생을 부축해서 방으로 들어간다. 잠시 후에 여학생 1명도 술잔을 든 채로 조장의 옆에 쓰려져 잠이 들었다.



“커억~ 이장님! 받으세요.”



마지막 남은 여학생이 술을 따른다. 여자 중에서 가장 고전적으로 생긴 친구로 옛날에 태어났으며, 종갓집 맏며느리 감으로 손색이 없을 몸매의 소유자다.



“속도 좀 조절합시다. 반만 드세요.”



10분이 지났는데도 수정이와 함께 들어간 놈에게 소식이 없다. 혹시나 싶어 가보니 둘이 딱 달라붙어서 자고 있다.



“모두 잠들었어요. 우리도 그만 정리하죠.”

“그래요. 그럼 나도 자야죠.”



여학생이 일어나려다가 쓰려진다. 지금까지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었던 모양이다. 술자리를 대충 정리하고 보니, 남녀가 엉켜서 말도 아니다. 연놈들을 옮겨주긴 힘에 부쳐서 조장 놈을 질질 끌어 한쪽 구석에 처박고, 여자들은 한쪽에 모아 이불을 덮어주었다. 대충 정리가 끝나니 긴장이 풀어지며 다리가 휘청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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