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게시판

앞집 남자와 내 아내 - 1부

올해 우리 부부는 처음으로 전세살이를 청산하고 집을 장만하게 되었다.

아내와 결혼한지 7년만인 셈이다. 결혼당시 스물일곱이던 아내가 어느덧 올해로 서른넷이 되었으니 말이다.

내집없이 결혼생활을 시작한 우리 부부는 그동안 내집 장만을 위해 절약, 또 절약을 되뇌이며 부단한 노력을

했었다.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아내였던지라 비좁은 집에서 어떻게 적응할 수 있을까 내심 걱정했던 나였지만

아무렇지도 않은듯 의연하게 적응하는 아내의 모습에서 안도의 숨을 쉬며 고마운 마음뿐이었다.

그런 아내를 위해서라도 내가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던것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사실 168의 늘씬한 키에 갸름한 얼굴선, 짙은 눈썹과 서글서글하게 큰 눈, 날씬한 콧날과 살짝 도톰한 입술,

윤기있고 탐스런 긴머리에 살짝 웨이브를 준 헤어스타일을 고수하는 아내는 올해 서른넷의 나이였지만

아직도 이십대 후반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내 주변 친구들이나 직장동료들도 내 아내를 본 이들은 왜 그녀가 나 따위와 결혼을 했는지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한 표정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뭐 어때서'라는 욱하는 심정도 들었지만 그보다도

그런 아내와 결혼한 내가 스스로 행운이라는 생각에 내심 흐뭇한 생각이 더 컸던 것도 사실이다.

디자인을 전공한 아내는 나를 만나기 전까지는 항상 훤칠한 키의 모델같은 남자들만 만나왔다고 한다.

아내 친구를 통해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아내 주변엔 항상 예체능쪽 전공 남자선배들이 둘러싸고 있어서

자신들이 아내의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보아왔던 아내의 남자친구 중에서 내가 가장 키가 작다고 한다.

그런 아내가 왜 나를 좋아하게 된 것인지 언젠가 아내에게 내가 직접 물어본 적이 있었다. 아내가 웃으며 말하길

나를 처음 봤을 때 정말 못생겼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하지만 나는 절대 '못생긴' 얼굴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내의 말이 적잖이 상처로 남았지만 겉으론 의연한듯 웃어넘겼다.

아내의 표현을 빌리자면 내가 참해 보였다고 한다. 아내가 만나던 화려하고 멀쑥한 남자들과 달리 수수하고

평범한 내 모습이 담백해보였다고 한다. 사실 담백하고 수수한게 아니라 아내를 처음 만날 당시 그저 연봉도

보잘것없는 회사의 신입사원에 불과했기 때문이었지만 아내에겐 그것 조차도 신선해보였던 모양이다. 아무튼

아내가 나의 좋은 점만 보아준 덕에 처가 어르신들의 맹렬한 결혼 반대를 무릅쓰고 연애 3년만에 겨우 허락을

얻어 결혼에 이를 수 있었다.

아내는 정말 배려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연애시절부터 나를 만나러 나오는 날엔 가급적 하이힐을 피했다.

키가 170을 겨우 넘기는 나를 배려한 것이었는데, 하이힐을 신으면 훌쩍 내 키를 넘어서버리기 일쑤였다.

오히려 나는 아내의 배려가 못마땅하여 지인들과의 모임이나 경조사가 있을 땐 아내에게 하이힐을 신도록

강하게 권하곤 했다.

사실 나는 친척들의 시선을 즐기고 있었다.

학교도 그저 그런 지방사립대학을 졸업하고, 평범한 둥글둥글한 외모에 키도 작은 내가 늘씬하고 세련된

스타일의 아내와 함께 나란히 서있는 모습은 내 또래 사촌형이나 동생들에게 질시와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고 그런 시선이 느껴질 때마다 절로 어깨가 으쓱해지곤 했던 것이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생활이 정말 행복하고 꿈만 같았다.

단지 한가지 안타까운 일은 결국 돈 문제였는데, 장인은 결혼은 허락해 주었지만 단호하게 아내에게 모든

재정적 지원을 중단해버렸고, 그덕분에 우리 부부는 고단한 맞벌이 생활을 이어나갈 수 밖에 없었다.

나로서는 나와의 결혼을 택하며 어려운 가시밭길로 접어든 아내에게 한없이 미안할 따름이었다.



그동안의 자금을 모아 우리 부부가 어렵게 마련한 집은 마침 이직을 결심하던 아내가 다니던 디자인회사를

그만두고 아내의 퇴직금까지 몽땅 쏟아부어 마련한 집이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자금은 다소 부족했고

나머지 자금을 마련할 때까지 전세를 끼고 집을 살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우리가 당분간 거주할 임시 거주공간이 필요했고 어쩔수없이 우리가 매입한 아파트 단지 주변의

오래된 빌라촌에서 월세를 알아보는 수 밖에 없었다.

월세는 터무니없이 비싸고 집은 비좁았지만 그래도 그중 나은 한 곳을 택해 계약하게 되었다. 마땅한 매물이 없어

울며 겨자먹기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집이었다.

빌라는 거실에 큰 창문이 있었는데, 문을 열면 건너편 앞집 창문과 마주보고 있어 서로 문을 열면 상대방 집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구조였다.

오밀조밀 붙어있는 집들인데다가 집주인들이 처음부터 임대 목적으로 지은 집들인지라 이웃간의 프라이버시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지은 집들이었다.

게다가 집들 모두 대체로 어두웠고 낮에도 집에 불을 켜두어야 했다.

절로 한숨이 나왔지만 1년만 고생하면 내집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며 참는 수 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우리 앞집에는 50대초반 즈음의 부부가 살고 있었다.

여자는 새벽일찍 일하러 다니는 모양이라 한번인가 스치듯 지나친게 다였고 남자는 하루종일 집을 지키고

있는듯 했다. 직장에서 퇴직을 한 것인지 원래 직업이 없는지는 몰라도 가끔 골목에 서서 담배를 태우곤 한다.

이사오던 날, 골목에서 남자를 처음으로 만났는데 대머리에 가까운 숱이 없는 머리에 후줄근한 런닝과 츄리닝

바지, 그리고 삼선 슬리퍼를 신은 남자는 배까지 불룩 튀어나와 런닝을 팽팽하게 만드는 바람에 볼썽사나운

모습이었다. 그에 비해 팔뚝은 가늘어서 마치 거미를 연상하게 하는 몸매였다. 그래도 두툼한 인상의 투박스러워

보이는 남자의 얼굴은 항상 미소를 머금고 있어 붙임성은 있어 보였다.

골목에서 나와 마주쳤을 때도 앞집 남자가 나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었다.

동네에서 내가 처음으로 인사를 나눈 이웃인 셈이었다.



아내는 아무래도 앞집과 너무 가까이 있다보니 신경이 쓰여서 처음 얼마동안은 창문을 꼭 닫고 지냈다고 한다.

반투명 창문이다보니 닫기만 하면 신경쓰일 일이 없었다. 그런데 해가 뜨니 점점 기온이 올라서 도저히 창문을

닫고는 지낼 수가 없었다는데, 잠깐 있을 월세집이었기에 에어컨도 설치하지 않았었고 선풍기에만 의존하던

터라 아내가 힘들어 할만도 했다. 창문을 열고 커튼을 쳐서 창을 가려봤지만 엷은 커튼이라 통풍만 가로막을뿐

없느니만 못했다.

아파트에 살때는 생각도 못하던 프라이버시 문제가 생기니 아내도 얼른 적응이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창문을 닫고 있다가 찜통 속에 땀만 흠뻑 젖어버려 온몸이 끈적거리자 할수없이 창문을 열어버렸다고 한다.

한적한 주택가 골목의 열한시반은 노곤한 시간이었고 앞집엔 마침 아무도 없는듯 하여 아내도 어느새 긴장을

늦추고 샤워나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땀에 푹 절은 티셔츠와 반바지, 속옷을 모두 벗고 화장실 안에 함께 마련된 샤워기 앞에 서서 온몸에

물을 끼얹자 생기가 돌아오는듯 했을 것이다. 한 10분여 걸쳐 샤워를 끝낸 아내는 그제서야 미처 화장실에

갈아입을 속옷을 가져오지 못했다는 걸 깨닫고 아차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예전 집에서처럼 별 생각없이 문을 열고 알몸으로 거실로 나온 것이 화근이었다.

화장실 문을 열고 나와 거실을 건너 안방으로 가며 무심코 거실 창문 쪽을 바라본 아내는 앞집 남자가 거실에

있는걸 보게 되었다고 한다.

앞집 남자는 거실소파에 누워있었는데 트렁크팬티 하나만 걸친 거의 알몸이나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아내를 본 앞집 남자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입이 벌어지는 것까지가 아내의 기억에 슬로우비디오처럼 남아있다고

한다. 아내도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몸을 가릴 생각도 못하고 놀란 얼굴로 안방으로 들어갔을 뿐이었다.

아내는 심장이 입밖으로 뛰쳐나올만큼 쿵쾅거리며 뛰었는데 온몸이 후들후들 떨려서 옷을 어떻게 입었는지도

잘 기억이 안난다고 한다.

이 이야기까지 듣는데 내 아랫도리가 이상하게도 묵직해지는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내으 이야기를 듣고도 별다른 내색하지 않으며 아무렇지도 않은듯 너털웃음을 웃었지만 이상하게도